알폰스 라티스본의 개종
성모기사회를 설립한 1917년, 가톨릭 교회는 알폰스 라티스본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것을 공식적으로 기념했습니다. 막시밀리안 성인은 이 사실을 기적의 메달이 고집스런 자유주의자이자 무신론자를 어떻게 회두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로서 여러 번 보고했습니다.
아래에 나온 알폰스 라티스본의 개종의 기록은 콜베 신부님이 저술한 “라티스본의 가톨릭 개종(1940)”이란 글에 기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1841년 11월, 28살의 알폰스 라티스본은 그의 고향인 스트라스부르를 떠납니다. 그의 쇠약해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말타로 향합니다. 그 후에는 콘스탄티노플로 갑니다. 표 예약에서 실수가 일어난 탓에, 그는 1842년 1월 5일에 로마에 도착합니다. 그 환경을 이용하여 그는 구스타브 드 뷔시에르 남작과의 만남을 잡게 됩니다. 알폰스는 유대인이지만, 구스타브는 개신교인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영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잘 어울립니다. 그들은 공통의 개인적 의견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둘 다 가톨릭교회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둘 다 형이 있고, (그 두 형 다 이름이 테오도르이며) 개종한 가톨릭 교도였다는 것입니다.
알폰스는 로마를 떠나기로 계획하지만, 콘스탄티노플로 떠나기 직전에,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 합니다. 이 도시에 대한 지식을 잘 아는 전문가는 구스타브의 형인 테오도르 드 뷔시에르 남작입니다. 그 남작은 또한 알폰스의 형인 테오도르 라티스본 신부의 진실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알폰스는 테오도르 남작을 방문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남작은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해주며, 알폰스에게 그가 로마에 올 때 그와 동행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는 알폰스에게 기적의 메달을 선물로 전해줍니다.
처음에, 라티스본은 그 메달을 받길 원하지 않지만, 결국 그것을 일종의 미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선물을 받습니다. 남작은 그대로 놓아주지 않고 알폰스에게 매일 성 베르나르가 지은 기도문 “기억하라(Memorare)”로 아침과 밤에 기도할 것을 간청합니다. 라티스본은 강하게 거절하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남작이 고집하자, 저항을 멈추고 뷔시에르의 열렬한 주장을 들어줍니다.
그 후에 라티스본은 기도문을 종이에 적으라는 요구를 수행합니다. 그 덕분에 “Memorare”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서, 마치 좋아하는 악곡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들려옵니다. “기억하라, 오 가장 자애로운 동정 마리아여, 누구든 당신의 보호를 찾아 피신하고, 당신의 도움을 간청하고, 당신의 중재를 구했던 자들이 도움 받지 않은 적은 절대 없었다는 것을. 이 신뢰에 힘입어 나 당신께로 날아갑니다, 오 동신 중의 동신이신 어머니, 당신께로 제가 갑니다. 당신 앞에 난 죄와 슬픔이 많은 채로 서 있습니다. 말씀이 현신하신 분의 어머니시여! 제 탄원을 경멸하지 마시고, 당신의 자비로 제 말을 듣고 답해주소서. 아멘.”
뷔시에르 남작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폰스 라티스본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친구들 중의 하나는 라페로네이스 백작이었습니다. 라페로네이스 백작은 진실로 성모님을 흠모했고 삶 속에서 자주 그분의 도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라티스본의 개종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음날 라페로네이스 백작은 죽습니다. 남작은 백작의 가족에게 장례식 준비를 돕겠다고 제안합니다. 테오도르 드 뷔시에르 남작은 그의 일들로 바빠서, 알폰스가 로마를 구경하는 1월 20일에 그와 함께 가지 못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알폰스를 스페인 광장에서 만나게 되고, 그에게 백작을 매장하게 될 사도 안드레아 성당에 함께 가자고 요청합니다. 그는 라티스본이 마차에 머물도록 조언하지만, 알폰스는 성당을 자세히 보러 나가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장례식의 준비를 유심히 보다가, 고인의 성을 물어보았습니다. 드 뷔시에르는 대답합니다. “내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드 라페로네이스 백작이었소.” 라티스본은 라페로네이스 백작을 전혀 몰랐기에,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보통 받는 가벼운 씁쓸한 느낌만을 받습니다. 백작은 성구보관실로 옮겨졌고, 이 순간부터, 남작은 일어난 일을 읊었습니다. “성구보관실로 돌아와서 나는 대천사 성 미가엘 예배당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라티스본을 보았소. 난 그에게 다가가서 세 네 번 그가 날 알아챌 때까지 살짝 건드렸소. 마침내 그가 얼굴을 내게로 돌렸는데, 눈물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의 두 손을 모으고는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말하더군. 오! 이 사람이 날 위해 어떻게 기도했는지요.
난 충격을 받았소. 나도 기적을 경험한 후에 느낄 수 있는 그런 똑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오. 난 라티스본을 일으켜 세웠고, 교회 밖으로 나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제 어디로 가길 원하는지 물었소.“
라티스본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로든 데려가 주십시오. 내가 본 것을 보고 나니, 순종하게 되었습니다.”나는 그가 적어도 일어난 일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말해주도록 권고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크게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기적의 메달을 붙잡고 친구하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그를 집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여전히 나는 계속 간청하였음에도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고, 그에게선 울음소리와 깊은 감탄만 흘러나왔습니다. “오! 제가 얼마나 행운인지요! 천주께서 얼마나 좋으신지요! 성총과 자애가 얼마나 가득하신지요! 이것을 알아채지 못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동정 받아야 합니다...”
나는 그를 예수회 성당의 빌포트 신부님께 곧바로 데려갔고, 그분은 그에게 이야기를 전부 해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 라티스본이 메달을 붙잡고 친구한 다음 크게 소리쳤습니다. “난 성모님을 보았습니다. 성모님을 보았어요!” 그는 감정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곧 그는 이야기를 할 만큼 충분히 마음이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 제가 교회에 있던 어느 순간부터 난 일종의 애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눈을 들었는데 갑자기 전체 건물이 제게 안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저 예배당이 전세상인 것처럼 제 앞에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고귀하고 장엄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제대에 서 계신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분은 제 메달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막을 수 없는 힘이 저를 그 분의 방향으로 밀었습니다. 동정녀께서는 제게 손으로 무릎을 꿇으라는 신호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말하는 듯 했습니다. “훌륭하구나!” 비록 그분은 말을 하진 않으셨지만 전 즉시 그분을 이해했습니다.
라티스본은 강한 감정적 충격에서 회복하기 위함 때문인지 자주 멈추면서 이 짧은 이야기를 읊었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고 천주님의 방식의 심오함과 그 분 자애의 말할 수 없는 보물에 궁금함을 느끼며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한 가지 말이 그 깊이 때문에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비록 그분은 말을 하진 않으셨지만 전 즉시 그분을 이해했습니다.” 정말로 라티스본은 믿음으로 넘쳐났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그의 마음에 믿음으로 넘쳐나서, 영적으로 훨씬 더 많이 담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모님에 대해 진실한 신자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는 성모님에 대해 확신에 가득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이 현실에서도 성모님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드 빌포트 신부님을 떠난 후에, 우리는 천주님을 찬송하였고, 처음에는 거룩하신 성모님 대성당으로 갔고 그 다음에는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갔습니다.
라티스본이 이 대성당들을 방문하는 동안 유지한 큰 기쁨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 그는 고발했습니다. “난 이제 왜 가톨릭 교인들이 그들의 교회에 대해 그렇게 많은 독실함을 가지는지, 왜 성당을 장식하려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여기는 너무 좋아요. 떠나고 싶어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여긴 더 이상 지구가 아니라 거의 천국 같습니다.”
가장 거룩한 성체 앞에 오자, 천주님의 존재가 그를 압도하여, 그가 떠나지는 않았지만, 거의 자신의 의식을 잃을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원죄를 갖고 태어난 탓에 진실한 천주님 앞에 서있는 것이 너무나 큰 짐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는 거룩하신 성모님 대성당으로 몇 걸음 걸어갔습니다.
“여기에 ― 그가 말했습니다 ― 전 두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전 거대한 자애로 보호받는 느낌입니다.” 전 열정을 가지고 성 종도들의 무덤가에서 기도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얘기해준 성 바오로의 역사는 그를 오랫동안 울게 했습니다.
저는 그가 본 다음 것들을 자세히 얘기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는 무엇이 성당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가게 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먼저 그는 예배당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천국의 여왕님의 흠 없으신 아름다움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러자 그 때 그의 눈이 성모님의 영광스런 찬란함을 견디지 못 했습니다.
그는 성모님을 향해 3번이나 눈을 고정하려고 했지만, 그의 노력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성총의 빛이 쏟아져 나오는 그분의 손에 그의 눈을 들지 못하도록 무언가 방해했습니다.
“오! 내 주님 ― 그가 외쳤습니다 ― 바로 30분 전에 제가 신성모독을 행했다니, 가톨릭 신앙에 증오를 느꼈다니요! 그러나 그 때 유대인으로 있을 권리를 가진다는 제가 가진 인간적 생각을, 절 아는 모두가 이해했습니다. 제 가족은 유대인이고, 약혼자도 유대인이며, 제 숙부도 유대인이었습니다.”
Book "The conversion of Marie-Alphonse Ratisbonne" — download